낙동강, 죽다. -천상병 시인의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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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동강 관련 기사 원문)

 

 

 “천상병 시인은 1980년대에 을숙도나 명지 둔치를 자주 찾았습니다. 하구의 일몰을 보며 그는 “아름답제? 좋제?”하며 그저 눈물을 흘렸지요.”
김상화 낙동강 공동체 대표가 추억하는 천상병시인이다.

 우리에게 '거지시인'으로 더 잘 알려진 천상병시인은 학창시절 교과서에서 '귀천'이라는 시로 소개되기도 한 시인이다. 그는 낙동강 둔치에 앉아 아름다운 강을 보며... 울고 울었다고 한다.

 

 그는 가난이 직업이라 말했고, 그 말대로 가난하게 살다가 가난하게 십원짜리 꾹 쥔 영혼 하늘로 돌아갔다. 그가 그렇게 사랑했던 낙동강 풍경은, 그가 그렇게 미워한 개발업자의 푼돈을 위해 사라져간다.

 

 거지시인 천상병이 울며 읊은 강가에 비친 저녁노을을, 헬기타고 그 위를 지나간 '지도자'에게는 보이지 않았나보다.

 

 어제 보고 오늘 보고, 내일 또와서 또 봐도 질리지 않을 그 풍경이... 누군가에게는 그저 더러워진 시궁창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나보다.

 

 담뱃갑에 아직 담배가 두둑하여 행복을 느낀 한 시인의 앉은 자리에, 오늘도 포크레인은 울부짖는다.

 

- 천상병 시인을 그리워하며, 마이다스 쓰다.

 

 

 

 

 

 

 

 

 

나의 가난은

 

 

천 상 병                   

 

 

오늘 아침을 다소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한 잔 커피와 갑 속의 두둑한 담배,

 

해장을 하고도 버스값이 남았다는 것.

 

오늘 아침을 다소 서럽다고 생각하는 것은

 

잔돈 몇 푼에 조금도 부족이 없어도

 

내일 아침 일도 걱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가난은 내 직업이지만

 

비쳐오는 이 햇빛에 떳떳할 수가 있는 것은

 

이 햇빛에서도 예금통장은 없을 테니까......

 

 

나의 과거와 미래

 

사랑하는 내 아들딸들아

 

내 무덤가 무성한 풀섶으로 때론 와서

 

괴로웠을 그런대로 산 인생 여기 잠들다, 라고,

 

씽씽 바람 불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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