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과 사유) 인도, 낯선 여행자도 철학자로 만드는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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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델리의 시크교 사원에서 찍은 시크교도 터번 두르는 장면)


"당신은 당신의 신 안에서 행복한가? 당신이 당신의 신으로부터 행복을 찾는다면, 당신이 모시는 신이 누구이건 우리는 형제이다."

 내가 인도에 배낭여행을 갔을 때 바라나시로 가는 3등석 열차간에서 힌두교도인 인도의 남자와 때아닌 '종교논쟁'을 하였을 때 그가 한 말이다. 그의 말에 내가 받았던 충격은 지금도 생생하다. 여행이 주는 묘미는 이런 곳에 있다. 의도하지 않은 곳에서 의도하지 않은 사람과의 의도하지 않은 대화에서 삶의 깊이를 만나고 내 안의 신을 만난다. 당신이 당신의 신에게 의문을 가지고 있다면, 당신의 신께 의문이 없다 하여도 당신이 모시는 그분을 모시는 사람들이 이해되지 않는다면, 친구여. 그대에게 권한다. 지금 인도행 항공편을 끊어, 길가의 아이와, 고행중인 수행자와, 마음을 찾아 떠난 순례자를 만나라. 그리고 그곳에서 당신을 만나라.


당신이 인도의 어느 길에서 토론중인 인도인들을 만난다면 그 곳에 함께 앉으라. 그들은 논쟁을 좋아하여 당신이 참여한다고 해도 환영할 것이다. (물론 영어로 대화해야 한다.-간단한 말만 할 수 있다면 생각보다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으리라 확신한다.) 그들에게 당신이 모시는 신은 중요하지 않다. 당신이 신으로부터 행복으로 가는 길을 찾았다면, 당신은 그들과 같은 길을 가고 있을 뿐이다.



그 길에서 당신이 만난 인도는 내가 만난 인도와 다를지 모른다. 아니, 다를수밖에 없다. 그것은 인도가 달라져서가 아니다. 당신과 내가 가진 눈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확신하건데 그 길의 끝에서 당신과 나는 하나의 화두를 발견할 것이다.

행복은 무엇인가?

당신과 내가 애타게 찾고 있던 그 행복이 어디쯤 있을까? 우리는 남의 얼굴 속에서, 남의 평가 속에서 우리의 행복을 찾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인도의 하늘이 당신과 나에게 묻는다. 어째서 너의 행복을 남의 표정과, 박수에서 찾는가? 행복은 처음부터 그 자리에 있었는데 말이다.

고요히 앉아서 들으라. 이 세상의 모든 혼돈이 당신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를... 그리고 그 혼돈의 말 속에서 당신을 만나라.




 나는 인도에서 수천 킬로미터를 걸어 마침내 '신의 강' 겐지스에 도달한 한 노인이 그곳에서 얻은 행복을 고향의 가족에게 주기 위해 겐지스 강물을 떠 가는 것을 본 적이 있다. 그러나 행복은 물동이에 담기지 않는다.

노인이 찾은 행복은 겐지스로 가는 길 위에서, 가족을 위해 겐지스의 물을 뜨는 그녀의 손길에서, 그리고 그 물을 보고 기뻐할 가족의 얼굴을 상상하면서 찾아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벗이여, 인도에 관한 글을 읽으며 위안을 삼지 말라. 단지 당신의 걸음에서 인도를 찾으라. 안타깝게도 행복은 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당신의 마음이 찾는 것이기 때문이다.




암베르 성에 해가 질 때 무한한 행복감을 발견한 것은 나의 마음일 뿐, 어떠한 사진으로도 당신의 마음에 나의 행복이 전해질 길은 없으니... 당신의 마음이 인도를 원한다면 그렇게 하라.


나마스떼. 인도의 인삿말이다. "당신안에 계신 신께 경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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