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노 부부가 전화거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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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전에 있었던 이야기입니다..

당시 저는 학생이었는데, 우연히 기차를 타고 서울로 올라올 일이 있었지요..

뭐 혼자 올라오고 있었으니... 엠피쓰리 귀에 꽂고 말없이 앉아있었습니다..

이윽고 제 뒷자석에는 딱 봐도 평생을 땅 일구며 살아오신것 같은...



흙냄새가 나는듯한 노 부부가 무슨 짐이 그리 많은지, 젊은 제가 봐도 저걸 어찌 다
들고 오셨을꼬, 싶을 만큼 바리바리 뭘 싸가지고 타시더군요...

두분은 말없이 그렇게 기차에 몸을 맡기고 서울로 향하고 계셨습니다.

저도 뭐, 그분들에게 큰 관심이 없었죠.

이윽고, 기차가 청량리역에 다달을 무렵 뒤에 앉은 할머니가

"저기 젊은양반" 하고는 제 어깨를 살짝 건드리시더군요...

"예 어르신" 하고 돌아봤더니, 할아버지는 묵묵부답 점잖게 앉아계시고

할머니가 대뜸 "이게(핸드폰) 전화가 왜 안되는 거유?"

하고는 저에게 대뜸 당시 유행했던 옥 핸드폰 고리가 곱게 걸려있는

전화기를 넘겨주시더군요..


그래서 제가 다시 여쭈었습니다.

"어디에 전화를 걸려고 하시는 겁니까?"

라고 말씀드리자 할머니께서는 자랑스럽다는 듯이

"내가 지금 아들 집에 가려는데, 아들놈에게 전화를 하려고 해요.
근데 이놈으 것이 아들이 안받고 이상한 아가씨가 받네요"


그래서 제가 무엇이 문제인지 보려고 일단 제 전화기로 걸어 보았습니다.

녹음된 목소리가 나오면서 뭐가 어저고어쩌고 하는데;; 잘 모르겠더라구요 ㅎㅎ

"어르신, 잘 모르겠네요. 아드님 전화번호를 알고 계시면, 제 전화기로 한번 걸어 보시죠"

하자 할머니는 "아이구, 젊은 양반 고맙소" 하시더군요..

근데, 아드님 전화번호를 알아야 하기에
(지금 생각해보면 할머니 핸드폰에서 찾아볼껄 그랬습니다.)



"어르신, 아드님 전화번호를 혹시 알고 계신가요?"


하자, 그때까지 점잖게 앉아계시던 할아버지가 목을 가다듬으며 이렇게 말씀하시더군요. ㅎㅎㅎ

"거, 1번을 누르면 아들이 나오고, 2번을 누르면 며늘아가가 나옵니다."

아마도 아드님이 연로하신 부모님께 핸드폰을 사 드리면서 단축번호 1번에 자신을, 2번에 며느리를
입력해 놓은 모양이더군요 ㅎㅎ

제 전화로 걸어도 1번을 누르면 아들이, 2번을 누르면 며느리가 나올줄로 철썩같이 믿고 계시는 할아부지 ㅎㅎ

뭔가... 따뜻한 사람느낌이 나서 마음이 참 좋았어요. ㅎㅎ

결국은 통화목록을 보고 제 핸드폰으로 전화를 걸었더니..

아드님은 벌써부터 청량리에 와서 노부모님을 기다리고 있더군요.

아마도 그날 저녁은 온가족이 옹기종기 모여 두런두런 옛날 이야기를 하며
따뜻하게 보내지 않았을까요?^^

참, 마음 따뜻해지는 기억인데, 불현듯 생각이 나서 이렇게 포스팅해 보네요 ^^

두분 어른들께서 아드님과 행복하게 오래오래 사셨으면 좋겠네요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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