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군(獨立軍)'이라는 단어가 우리 민족의 가슴에 울리는 공명은 남달리 크다.
우리 역사의 아픔이 고스란이 남아있는 단어이며..
짖밟히고 억압당해도 무너지지 않은 한 줄기의 자존심을 상징하는 단어이기 때문이다.



가슴떨리는 그 단어를... 인도 배낭여행길에서 만난적이 있었다.

티베트... 한때 중국 대륙을 공포에 몰아 넣을 만큼 호전적인 민족이었으며...
중국의 황제조차 그들이 두려워 자신의 딸을 볼모로 보내기도 한 만큼 강성한 민족이었다.
"토번" 이라고도 불리웠던 그들은 불교를 받아들이면서 스스로 "武"를 버리고, 살생을 멈췄다.

이후 판첸라마가 중국정부에 납치되는 등.. 핍박을 받으며 살아온 민족이며..
현재 종교적 지도자인 달라이라마는 인도에 망명중이다.

(포스팅 내용과 무관한 사진입니다.)


인도의 모 처.. (처음에는 사진과 장소를 말해주려 했지만.. 그들을 위해 그들의 사진과 그 장소는 밝히지 않기로 했다.)

이곳에서는 환전이나 스스로 만든 수제 공예품을 판매하는 등 다양한 물건을 구경할 수 있는
장이 항상 서고 있다.

이들은 단위가 작은 돈보다는 단위가 큰 돈을 선호하며.. 환전을 할 때도 정직한 환율에
따르기로 유명하다. 아니, 오히려 환율보다 더 쳐주기도 한다.

그들에게 물었다. "왜 환율을 더 쳐주더라도 단위가 큰 미화를 선호하는가?"

그들은 대답하기를 꺼려했다.

뭔가 느낌이 와서... "나는 한국인 관광객이다. 걱정할 필요 없다." 라고 말하자..

그제서야 "우리는... 독립군이다. (An army for national independance)"

"그 돈은 독립자금으로 쓰일 것이고... 따라서 운반하거나 건네주기 편하게 큰 단위를 선호한다."

... 가슴 한켠에 짠한 마음이 밀려왔다.

얼마나 가슴 저린 조국이겠는가?

외국 땅에서 벌어들인 돈으로 조국의 독립을 위해 움직이는 그들의 분주한 삶이 느껴졌다.

그들의 상처 많은 투박한 손에서... 그들의 아픈 삶이 느껴졌고...
그들의 주름진 눈가에서... 그들이 사랑하는 고향, 티벳 고원의 찬바람이 느껴졌다.

그들은 입버릇처럼 말한다. "동서남북 어디서건.. 집이 최고이다."

집으로 가지 못하는 그들의 입에서.. 집이 최고라는 말을 듣는 여행자의 가슴 또한 뜨거워졌다.


(티벳 유혈 사태의 고발사진....)

티벳의 젊은이들은 말한다. "다시한번... 칼을 들어야 한다. 조국을 찾아야 한다."

그러나 "관세음보살"의 현신이라고 그들이 믿는 달라이라마가 폭력사태를 허락할지는 미지수이다.
그가 티벳의 젊은이들에게 칼을 드는 것을 허가한다면..
그는 이미 "관세음보살"이 아니게 되는 자가당착에 빠지게 되기 때문이며,

불교국가로써의 정체성을 상실하는 길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달라이라마가 어떤 결정을 하건... 오늘도 티벳의 망명자들은
거리에 앉아...
거리의 먼지를 마시며...거리의 불특정한 사람들에게...
 "거리의 법칙"대로 투박한 수제품을 팔고 있다.

(이들의 손재주는 정말 좋다. 공예품 자체만 놓고
본다면... 상당한 수준인것 같다.
주로 불상을 팔지만, 힌두교도들을 위해 힌두교의 신을 조각한 조상도 팔고 있다.)




어찌되었건... 국토를 무력에 의해 침탈당하고 핍박받는 것이 어떤 것인지 잘 아는 한국인으로써...
모든 이해관계와 국제적 권력관계에 대한 틀을 버리고...

나는 티벳의 독립을 지지한다.

티베트가 무력으로 침탈당한 것에 반대하며, 티벳인들의 고향에 티베트 사람들의 허락도 없이

철도를 준설하고 관광수익을 올리는 것에 철저히 반대하며..
이름없는 수많은 티벳인들을 망명길에 오르게 하고, 수많은 티벳 승려를 무참히 살해한 것에 반대한다.

그들의 신을 농락한 것에 반대하며.. 그들의 삶을 비웃은 것에 반대한다.



그들의 부처님이 그곳에 있다면... 부디 그들의 바램이 그들의 부처님께 들리기를...
부처님의 소관이 아니라면...다른곳에 거하시는 다른 신께서... 그들의 피눈물을 닦아 주시기를...


원래는 조금 더 자세히 그분들에 대해 서술하려 했으나...
혹시나 제 글이 그분들께 피해가 가면 안되겠다는 생각에..
간략한 서술로 그쳤음을 밝힙니다.






Posted by 변방마이다스 마이다스의세상 트랙백0 : 댓글 32
최근 한 이웃님 (바람양님)의 인도에 관한
포스팅을 넋을 잃고
보고 있는 한 독자로서,
인도를 배낭여행했던 저의 경험도
여러분과
공유하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이 포스팅을
하게 되었네요.


오늘 이야기할 곳은, 우리가 인도!
하면 상상하는 그 모든 이미지의
아버지이며,
모든 인도인들의 마음의 고향인 겐지스 강.

그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바라나시에 대해 짧은 이야기를 해보고자 합니다.

인도인들은 바라나시를 두고 이렇게 말합니다.

"역사보다 오래되고, 시간보다 위대한 곳"

저도 나름대로 여행을 좋아하는 지라, 북인도, 남인도를 모두 배낭여행으로
가 본 경험이 있는데, 수십개의 도시를 보고
당신의 마음을 흔든 단 한곳을 뽑으라! 라고 한다면 주저없이 바라나시를 뽑을 겁니다.
(인도인들은 V자의 발음을 잘 못해서 바라나시라고 하면 못알아듣는 경우가 많죠,
제 경험으로는, 또 인도인 친구가 알려준 바로는 "와라나시" 또는 "외나레스" 가 그들 발음에 가장
가깝다고 합니다. 바라나시를 가시는 분들 참고하시길)



저에게 바라나시가 충격이었던 가장 주요한 이유는 바로 "버닝가트" 때문입니다.
시체를 화장하여 겐지스에 뿌리는 의식을 진행하는 곳이죠.
실제로 한 사람의 장례식을 찬찬히 지켜 보았습니다.
(그들의 종교를 존중하는 의미에서 사진은 찍지 않았습니다.)

먼저 "망자의 길" 을 따라 시신이 운구되어 옵니다.
"상주"는 머리를 삭발합니다. 그들의 전통이죠.
상주가 여자인 경우도 마찬가지로 삭발합니다.

망자의 몸을 갠지스 강에 한번 씻습니다.
그리고는 쌓아올린 나무더미 위에 시신을 올리고,
그 위로 다시 나무를 쌓아올립니다.

거기에 "망자에게 주는 최후의 선물"
값비싼 향료를 뿌립니다.
아무리 가난한 자라도 이 향료를 뿌리는데,
인도인들은 이 향료 값을 서로 도와 줍니다.

좋은 업을 쌓기 위해서라고 하지요.

여기에 불을 붙입니다. 아까 뿌린 향료는
불이 매우 잘 붙습니다.

망자는 하늘을 쳐다보고 눕힙니다.
신께서 그의 얼굴을 보셔야 하기 때문이라고 그들은 그러더군요.

다 태운 재는 겐지스에 뿌립니다.

그러나 가난한 자는 뗄감을 많이 사지 못해 다 타지 못합니다.
(인도인들은 살아있는 나무를 절대로 베지 않습니다. 위법이죠.
말라죽은 나무만을 뗄감으로 쓰기 때문에 뗄감의 가격은 천정부지입니다.)

호시탐탐 고기를 옅보던 들개들이 몰려들고,
망자의 떨어져 나간 팔을 물고 도망칩니다.

아연실색한 상주가 개들의 뒤를 쫓습니다.

그는 빈손으로 돌아옵니다.

의식은 계속되죠.

망자의 타다 만 시체가 갠지스에 버려 지자,
이번에는 잠수부들이 그의 타다 만 몸에 남은 금니라든지,
장신구를 줍습니다.

상주는 말리지 않습니다...

또다시 인도인에게 물었습니다.

"그것이 삶이라는 굴레" 라고 대답합니다.

뱃사공에게 버닝가트에 대해 물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누구든 살면서 자기의 것이 생깁니다.
이것은 내 차다, 이것은 내 집이다. 싸웁니다.
그리고 그들 모두는 죽어서 어머니의 강 겐지스로 옵니다.
(그들은 겐지스라고 안하고 강가라고 합니다.)
여기에서는 모든 인간에게 차별은 없습니다.
신께서는 그들의 돈이 아니라 그들의 카르마(업)으로 그들을 심판하시니까요"



그들이 겐지스의 강물에 띄우는 초입니다.

겐지스 자체가 그들에게 "신"이기 때문에, 그들은 그렇게 신에게 편지를 씁니다.

혹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이 누구든 만일 당신이 인도에 가면, 그곳에서 당신을 만날것이다."

삶과 죽음이라는 굴레가 얽히고 설켜 만들어진, 겐지스의 강물은 오늘도 흐르고 있습니다.



철학자가 아닌 저같은 필부도 철학자로 만들어버린 곳, 바라나시...

당신은 당신을 찾고 계십니까?

 
Posted by 변방마이다스 마이다스의세상 트랙백0 : 댓글 33

(델리의 시크교 사원에서 찍은 시크교도 터번 두르는 장면)


"당신은 당신의 신 안에서 행복한가? 당신이 당신의 신으로부터 행복을 찾는다면, 당신이 모시는 신이 누구이건 우리는 형제이다."

 내가 인도에 배낭여행을 갔을 때 바라나시로 가는 3등석 열차간에서 힌두교도인 인도의 남자와 때아닌 '종교논쟁'을 하였을 때 그가 한 말이다. 그의 말에 내가 받았던 충격은 지금도 생생하다. 여행이 주는 묘미는 이런 곳에 있다. 의도하지 않은 곳에서 의도하지 않은 사람과의 의도하지 않은 대화에서 삶의 깊이를 만나고 내 안의 신을 만난다. 당신이 당신의 신에게 의문을 가지고 있다면, 당신의 신께 의문이 없다 하여도 당신이 모시는 그분을 모시는 사람들이 이해되지 않는다면, 친구여. 그대에게 권한다. 지금 인도행 항공편을 끊어, 길가의 아이와, 고행중인 수행자와, 마음을 찾아 떠난 순례자를 만나라. 그리고 그곳에서 당신을 만나라.


당신이 인도의 어느 길에서 토론중인 인도인들을 만난다면 그 곳에 함께 앉으라. 그들은 논쟁을 좋아하여 당신이 참여한다고 해도 환영할 것이다. (물론 영어로 대화해야 한다.-간단한 말만 할 수 있다면 생각보다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으리라 확신한다.) 그들에게 당신이 모시는 신은 중요하지 않다. 당신이 신으로부터 행복으로 가는 길을 찾았다면, 당신은 그들과 같은 길을 가고 있을 뿐이다.



그 길에서 당신이 만난 인도는 내가 만난 인도와 다를지 모른다. 아니, 다를수밖에 없다. 그것은 인도가 달라져서가 아니다. 당신과 내가 가진 눈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확신하건데 그 길의 끝에서 당신과 나는 하나의 화두를 발견할 것이다.

행복은 무엇인가?

당신과 내가 애타게 찾고 있던 그 행복이 어디쯤 있을까? 우리는 남의 얼굴 속에서, 남의 평가 속에서 우리의 행복을 찾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인도의 하늘이 당신과 나에게 묻는다. 어째서 너의 행복을 남의 표정과, 박수에서 찾는가? 행복은 처음부터 그 자리에 있었는데 말이다.

고요히 앉아서 들으라. 이 세상의 모든 혼돈이 당신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를... 그리고 그 혼돈의 말 속에서 당신을 만나라.




 나는 인도에서 수천 킬로미터를 걸어 마침내 '신의 강' 겐지스에 도달한 한 노인이 그곳에서 얻은 행복을 고향의 가족에게 주기 위해 겐지스 강물을 떠 가는 것을 본 적이 있다. 그러나 행복은 물동이에 담기지 않는다.

노인이 찾은 행복은 겐지스로 가는 길 위에서, 가족을 위해 겐지스의 물을 뜨는 그녀의 손길에서, 그리고 그 물을 보고 기뻐할 가족의 얼굴을 상상하면서 찾아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벗이여, 인도에 관한 글을 읽으며 위안을 삼지 말라. 단지 당신의 걸음에서 인도를 찾으라. 안타깝게도 행복은 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당신의 마음이 찾는 것이기 때문이다.




암베르 성에 해가 질 때 무한한 행복감을 발견한 것은 나의 마음일 뿐, 어떠한 사진으로도 당신의 마음에 나의 행복이 전해질 길은 없으니... 당신의 마음이 인도를 원한다면 그렇게 하라.


나마스떼. 인도의 인삿말이다. "당신안에 계신 신께 경배를..."
Posted by 변방마이다스 마이다스의세상 트랙백0 : 댓글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