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를 배우라#1]민주시민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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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이다스입니다. 오늘은 노무현 시민학교에서 진행하는 강좌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어보려고 합니다.

이른바 "시민학교"입니다. '민주주의'를 배우는 학교.. 라는 거지요.

민주주의란 무엇이며, 시민에게 필요한 자질이란 무엇인지 다루어 보고 '시민학교'의 커리큘럼을

분석해 보고자 합니다.





민주주의란 무엇인가?


민주주의란 무엇인가. 이 얼마나 광범한 주제입니까?

마이다스는 대학에서 "민주시민교육"을 전공했습니다. 시민성 교육을 수행하기 위하여 당시 제가 공부했던 내용은

"정치학" "경제학" "문화인류학" "사회학" "법학" "교육학"의 일반이론들 이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민주시민"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기 위하여 시민에게 필요한 자질이 무엇인지를 역추론해 볼 수 있습니다. 바로 사회 현상을 "올바르게 바라보는" 안목이지요. 정치는 그 속성상 상징조작과 교묘한 시스템의 조작을 통하여 대중을 현혹할 수 있는 높은 가능성을 갖추고 있습니다. 따라서 본질적으로 정치가 이용할 수 있는 속임수들에 대하여 이해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예컨대 정치사에서 보여지는 플레비사이트의 위험, 게리멘더링, 준봉투표.. 민주주의를 실패로 보이게 만들었던 수많은 위협과 "합헌"을 빙자한 민주주의의 저해행위 등을 배움으로서 우리는 정치가 가지고 있는 위험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그리고 더 많은 시민이 더 본질적으로 민주주의를 이해할 때야 만이 시스템으로서의 민주주의도 더욱 완전히 굴러갈 수 있겠지요.



"법을 넘어선 저항은 민주주의로부터의 이탈을 의마하는 것이 아니라 민주주의의 절대적 기초이다"


본질적으로 민주주의는 "체제로서의 민주주의"와 "시민의식으로서의 민주주의"로 구분할 수 있다고 봅니다.

즉, System logic으로서의 민주주의가 완성되었다고 하여 그 사회를 완벽하고 본질적 의미에서의 민주주의 사회라고 볼 수는 없죠. 다시 말하자면, 시민이 "시민의식"을 갖추어야 비로소 시스템과 조화를 이루어 민주주의 사회로서의 역할을 분명히 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민주주의를 많은 분들이 "여행용 가방"에 비유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입니다. 민주주의 자체는 가방에 불과한데 이 시스템을 갖추었다고, 가령 "민주적으로 보이는 의사결정과정"을 거쳤다고 해서 사회가 민주적 결론에 도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거죠. 


민주주의 역사상 '가장 완벽한 헌법'이라는 바이마르 헌법을 근거로 히틀러가 탄생했습니다.

히틀러는 자신의 집권 정당성을 다시 확인받기 위하여 이른바 플레비사이트 (재신임투표)를 감행했죠.

결과는, 단 1표 차이로 히틀러의 승리.

히틀러는 독일 국민에게 받은 재신임의 힘으로 군국주의에 더욱 박차를 가했고, 폴란드를 침공했으며

수많은 유태인을 학살했습니다.



히틀러의 군국주의를 가능하게 했던것은 다름아닌 민주주의였다.


이러한 역사가 증언하고 있는 것은, "완벽한 민주주의 시스템" 역시 "비 이성적 국가의사"를 도출해 낼 수 있다는 점이지요. 따라서 그 '여행용 가방'에 들어 있는 시민의 시민성이 민주주의를 완성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이라는 점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미국의 정치학자 후쿠야마는 동구권 등 공산주의의 붕괴로 '역사의 종언- The end of history'이 이루어졌다고 평가했습니다. 보편적 역사가 종언을 고하고 역사의 승자로서, 민주주의가 우뚝 섰다는 것이지요.

저는 반문합니다. "역사는 끝났는가?"

아직도 세계 곳곳에서는 민주주의의 불완정성을 증명하는 사건 (테러, 전쟁, 내전, 반란) 등이 심심치 않게 창궐하고 있습니다. 보편적 인간 모두가 말하는 "완벽한 시스템"은 도래 했을까요?


본질적으로 완벽한 시스템에 도달했다면, 누가 대통령이 되든, 누가 수상이 되든, 체재의 운용에 어떠한 마찰도 일어나지 않아야 하지요.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시스템은 "완전하지 않고, 완전해 질 수도 없다"

입니다. 칸트가 말하는 "영원히 전쟁이 일어나지 않는 영구평화" 역시도 허구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욕망의 노예이기 때문이지요.

내가 가지지 못했으면, 다른사람도 가지지 못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지요...





그러면 민주주의는 이루어질 수 없는 "희망없는 시스템"일까요? 아닙니다. 결코 아닙니다.

후쿠야마가 말했던 보편적 역사의 기준에서 "역사는 끝났다"라는 평가는 부분적으로 진실이라고 봅니다.


답은 민주주의의 다른 요소, "시민성으로서의 민주주의"입니다.

이를 일련의 학자들은 "deliberative democracy" 즉 숙의 민주주의라고 부릅니다. 단순히 투표를 통한 의사결정이 아니라 시민들의 집단지성이 올바른 토론의 과정을 거쳐 "일반의사"를 도출해 내고, 이 일반의사가 "국가의사"로 환류되는 "절차"로서가 아닌 "과정"으로서의 민주주의..




Deliberative Democracy를 위하여



숙의민주주의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몇가지 필요한 것이 있습니다.


첫째는 "관용"입니다. 똘레랑스라고 알려진 이 관용의 원칙은 "다름"이 "틀림"이 아님을 인정하는 태도입니다. 나와 다른 의견을 말할 수 있는 권리를 변호하는 시민의식입니다. 

나는 당신이 하는 말에 찬성하지는 않지만, 당신이 그렇게 말할 권리를 지켜주기 위해서라면 내 목숨이라도 기꺼이 내놓겠다. -볼테르-

둘째는 민주주의에 대한 이해입니다. 절차적 민주주의에 대한 이해와, 사회적 합의가 도출되는 방식에 대한 본질적 이해를 가지고 있는 시민들의 집합이야말로, 민주주의를 민주주의로 만드는 비결이지요.


민주시민의 의무는, 우리가 사는 시대와 역사를 이해하고, 우리가 사는 민주주의를 이해하며, 적극적으로 토론의 장에 참여하여야 한다는 점이지요. 이러한 시민들의 참여의 과정을 거치지 않고는 어떠한 국가의사도, 어떠한 법률도, 어떠한 피선출직 공무원도 모두 "비민주적인" 절차를 통해 만들어진, 민주주의의 걸림돌.. 입니다.


제일 나쁜 국회의원이 누구인줄 아십니까?

바로 국회 의결에서 "소신투표"를 하고 있는 놈입니다.

대리인에 불과한 자가 감히 자신의 의견으로 국가의사 결정과정에 참여한다?!

이런걸 "어불성설"이라고 하지요...


그러므로 민주주의의 시민, 민주주의를 사는 시민, 민주주의를 만드는 시민이라면..

"민주주의"를 배워야 합니다. 이것은 의무입니다.


노무현 시민학교 바로가기


자신과 다른 생각을 하고 있다고 하여도, 귀를 열고 듣지 않으면 안됩니다.

자신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고 한다면, 얼마나 같은지 직접 듣고 구분해야 합니다.



민주주의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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